2011년 05월 03일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1%가 99%를 지배한다. ‘권력자’라고 칭해지는 이 1%들은 ‘자본’이라는 무기를 몸에 휘감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과 권력을 이용해 ‘피지배세력’ 혹은 ‘일반국민’이라 칭해지는 99%를 자신의 입맛대로 다룬다. 이 권력자들은 대통령도 무서워하지 않는다.(오히려 연단 옆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서 연설하는 대통령에게 연설을 빨리 끝내라고 ‘지시’한다.) 이들은 바로 금융대기업, 그리고 이 기업들을 소유하고 있는 대표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은 자본을 소유한 특정 부자들에게만 큰 혜택을 주고, 그렇지 못한 수백만 명의 국민을 가난으로 몰아넣는다. 이것이 마이클 무어가 바라본 자본주의에 지배당한 2009년의 미국이다.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2009년 마이클 무어 감독이 전세계적 금융위기를 몰고 온 미국 월스트리트의 추문을 파헤치며 자본주의의 탐욕을 정면으로 고발한 다큐멘터리다. 이미 <로저와 나>,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 그리고 <식코>를 통해 미국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진실’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특유의 풍자와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자본에 지배당한, 혹은 피해를 본 미국인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다큐멘터리는 로마제국의 멸망과정을 담은 영상을 2009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영상과 교차 편집해 ‘자본주의로 인한 미국 멸망’을 암시하며 시작한다. 이후 미국의 금융위기와 함께 주택 융자금을 갚지 못해 길거리로 ?겨나는 중산층 서민들과 미국의 경제위기를 도래하게 만든 금융기업들이 친기업 성향의 정부를 등에 업고 국민의 세금으로 구원을 받는 과정, 그리고 직장폐쇄로 해고된 노동자들과 그들 명의로 비밀리에 생명보험에 가입해 노동자의 죽음을 기업이윤으로 바꿔버리는 미국 대기업들의 횡포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전의 무어 영화가 그러하듯,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역시 매우 풍자적이다. 또한 매우 직설적이다. 릴뷰스의 제임스 베랄디넬리는 “이 영화에는 지금까지 무어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치솟는 분노(simmering anger)’가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 치솟는 분노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무어의 영화 중 가장 통쾌하다고 느껴진다. 특히 정부의 자금 구제를 받은 금융기업의 일부 CEO들의 사치를 추적하던 마이클 무어는 급기야 1톤 트럭을 직접 운전해 해당기업의 정문에 파킹하고 “CEO를 만나 국민의 이름으로 돈을 회수해 가겠다.”며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무모해보이면서도 속이 시원해질 정도다.
그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는 실패한 개념이며 미국이 사회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무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한 회사가 나온다. 이 회사는 사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공평하게 이윤을 나눠 갖으며,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전 직원 회의에서 의사결정사항이 발생할 경우 말단직원과 CEO가 동일한 1표를 행사한다. 무어의 이 같은 결론이 현실과 먼, 다소 극단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을 가진 세력들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역시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제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여파가 하나 둘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2009년의 미국. 마이클 무어는 이 나라의 자본주의에 대한 병폐가 극에 달하였다고 생각하고, 중간에서 타협하기보다 자신도 그 반대편 끝으로 가 미국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 by | 2011/05/03 14:39 | 트랙백 | 덧글(2)









